2008/06/25 10:30

마지막 한 분의 영웅을 모시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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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6.25 전쟁이 일어난지 58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 6.25.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상처중 하나가 우리나라 곳곳에 아직도 묻혀있는 '6.25 전사자들의 유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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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손길로… 유해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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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전사자는 추정 인원만 13만 5000여 명 정도다. 하지만 국립묘지에 안장된 전사자들은 약 40000여 명, 전체 사망자의 1/3에도 미치지 못하는 매우 적은 수다. 또한 이는 단지 기록상의 인원일 뿐이다. 징병 기록조차 없는 인원들까지 따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었는지 알 수 없다.

 과연 이 많은 인원들의 유해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유해는 아직도 차디 찬 전쟁터에 그대로 묻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이렇게 잊혀진 전쟁 전사자들을 우리의 호국영웅으로 모시는 사업이 진행중에 있다.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도 전쟁이 벌어졌던 곳에서 차가운 밤이슬을 맞고 지내고 있을 전쟁 전사자들의 영혼을 모시고 전쟁 유가족들의 한을 위로해 주는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도깨비뉴스가 찾아갔다.

 영동고속도로 하진부리 백적산 1142지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이곳은 1951년 1월부터 5월까지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우리나라 7사단과 해병대, 그리고 미군이 중공군,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72세의 할아버지가 “6.25 당시 이곳에서 많은 전투가 이루어 졌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 산에서 많은 시체들을 봤다”는 결정적인 제보를 해 현재 유해발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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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발굴 장소는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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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곳곳은 유해발굴을 위해 땅을 팠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위 사진은 6.25 전쟁 당시의 개인호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호가 낙엽과 흙으로 덮이지만 땅의 흔적을 보면 여기가 한번 팠던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약 120개의 호를 파면 약 1개의 유해를 발견해 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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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발굴 전에 예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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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발굴 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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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가 발굴된 자리에 표시를 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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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와 유품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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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병사들은 군입대전 고고미술 또는 사학 계통 전공자들로 지원하게 되면 면접 후 일정기간 교육 후 현장에 투입된다.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은 2000년 4월 3일 경북 다부동 328고지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3년 동안 한시적인 사업으로 시작되었지만, 이 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지난 2008년 2월 21일 국회에서 ‘유해발굴법률’이 통과되면서 국가가 책임지고 진행해야 할 국가사업으로 지정되었다.

 유해발굴 지역으로 지정하는 과정은 우선 많은 전쟁사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하더라도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아군이 패한 전투 현장이다. 전쟁에서 승리를 했을 경우에는 발생한 시신들을 어느 정도 수습해 놓지만 적군에게 패하면서 퇴각할 때는 정신없이 후퇴하기 때문에 시신을 그대로 방치해 놓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해발굴 감식단에서 우선 패전 지역을 방문해 지형 및 그들이 싸운 흔적들(개인호)을 찾아보고 특히 마을에서 오랜 세월 거주한 노인들의 말을 제보 삼아 검토 후에 그 지역을 유해발굴 지역으로 정한다.

 유해발굴 현장은 처참했다. 유해들은 50여 년의 세월동안 온갖 동물들의 괴롭힘을 받고, 낙엽 위에 혹은 산길에 그냥 버젓이 노출된 채로 무관심속에서 그렇게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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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뭇가지처럼 변해버린 호국영웅들의 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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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진 두개골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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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된 미군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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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된 유품들. 6.25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은 오히려 북한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전쟁 물품들을 미국에게 받았기 때문에 유품에서 미군 수통, 미군 전투화 등이 나왔다. 반면 북한군은 방탄모가 없어서 모자에 달린 별, 버클(buckle)의 모양, 총탄 등으로 구별한다. 즉 유해와 같이 나온 유품들을 가지고 아군이었는지 적군이었는지 추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쳐 싸우다가 전사한 그들을 오랜 세월 동안 경제적, 정치적 이유 때문에 차디찬 산속에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들의 영혼을 편하게 쉬게해 주는 노력을 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유해발굴 감시단 발굴과장 이용석 중령은 “이 일은 시간과의 전쟁이다”고 표현했다. 전사자의 유해를 찾는 데에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노인들의 증언이 결정적인데 이미 7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생존해 계시는 분들 조차 기억력이 쇠퇴하고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흐를 수록 전사자들의 유해들이 모두 부식되어 버려 형체 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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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을 설명해 주는 유해발굴 감시단 발굴과장 이용석 중령.

 그는 “내 아버지와 오빠의 유해가 이렇게 산길에 굴러다닌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군인의 신분에서 이분들을 뵐 때마다 정말 죄송스럽다”며 국사 시간에 누군가가 "아직도 수많은 전쟁영웅들의 유해가 묻히지 못하고 대한민국 곳곳에 나뒹굴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줬다면 지금 보다 빨리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했을 것이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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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지역에서 커다란 관을 가지고 이동하면 불편함으로 운구하기 편하도록 약식관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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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식관에 유해와 유품 등을 같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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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와 소주로 간단한 노제(路祭)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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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발굴된 유해는 '야전유해감식소'로 보내져 세척과 인류학 전공자들에 의해 정밀 감식을 실시한다. 뻐의 단단한 부분을 채취해 DNA 분석을 실시하고 국방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져 그동안 수집해 놓은 유가족들의 DNA를 비교해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한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은 9년간 전국의 주요 전투지역(다부동, 안강, 포항, 진동, 현리, 양구, 대관령, 횡성, 가평, 화천, 고랑포 등)에서 펼쳐졌으며 발굴된 유해는 2008년 5월 31일까지 2441구인데,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80구에 불과하다.

도깨비뉴스 김영욱 기자 hiro@dk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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